여성 서사라는 언어가 통용된다는 건 여전히 다다르지 못한 여성 서사의 길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뛰어난 이야기꾼들이 여성 서사에 관심을 갖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건 마치 빈 공간을 찾아가 점유하는 스트라이커의 감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제 남성 캐릭터를 여성으로 변환해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뛰어난 스트라이커의 자질은 좋은 위치를 선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골을 넣고 만다. 여성 서사도 마찬가지다. 동시대의 욕망을 이해하는 창작자의 기민한 감각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여성 서사가 도래한다. 그리고 지금 여성 서사의 최전선에는 선악의 구분을 막론하고 자신의 욕망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쟁취하는 ‘신여성’들이 신선한 줄기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헤어질 결심>의 송서래(탕웨이)는 꼿꼿한 여자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탐지기 앞에서도 사람을 죽인 적이 있으면 있다고, 없으면 없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모면하기 위한, 살아가기 위한 방편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뿐이다. 반대로 지켜주고 싶은 이가 있다면 스스로 피의자가 될지언정 말을 삼키지 않는다. 자신을 살인용의자로 의심하는 형사 장해준(박해일)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음이 가리키는 곳으로 나아가기를 중단하지 않는다. 살인도, 사랑도, 살아가기 위해 감행하고, 감당한다.
일찍이 <친절한 금자씨>의 이금자(이영애)와 <박쥐>의 태주(김옥빈),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와 숙희(김태리) 등 자기 주도적인 여성상을 거듭 제시해온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통해 또 한 번 여성 캐릭터의 외연을 넓혀냈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중국인이지만 여느 한국인도 발음해보지 못했을 법한 고풍스러운 어휘로 관객의 뇌리를 사로잡는 송서래는 탕웨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한국영화계에 연착륙시켰다는 점에서도 특별한 성과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정서경 작가가 함께 써 내려간 개성 넘치는 대사는 <헤어질 결심>을 재관람할 결심을 부추기는 매력과 저력의 원천이 된다.
한편 캐스팅 측면에서 탕웨이와 함께 대중적인 관심을 야기한 건 연수 역을 맡은 코미디언 김신영이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캐스팅이기도 했지만 코미디언이라는 선입견을 깡그리 부수는 정극 연기와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진 캐릭터라는 사실 자체가 더욱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캐릭터 면에서 보기 드문 여성 형사라는 점도 흥미롭지만 연수가 극 중 후반부에서 장해준의 파트너 형사 수완(고경표)의 자리를 대체하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점도 새삼 흥미롭다. 그럼으로써 서래와 연수 그리고 아내 정안(이정현)까지, 영화의 후반부에서 여성 캐릭터의 점유율이 일거에 상승한다.
“무능한데 착한 게 어딨어? 무능한 거 자체가 나쁜 건데.”
<작은 아씨들>의 오인주(김고은)는 평범하지만 책임감이 강한 여자다. 집안은 가난하고, 직장에서는 왕따 신세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낼 준비가 돼있다. 무책임한 부모가 보란 듯이 자신의 힘으로 두 동생의 뒷바라지를 해주고 싶다. 그렇게 악착같이 버틴다. 그런데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20억 원이라는 큰돈이 눈앞에 나타난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해도 되는지 실감이 나질 않아 편의점에서 값비싼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는 것으로 시작해 본다. 그렇게 하나씩 사소한 것들을 사다 보니 보다 큰 것을 가질 결심도 하게 된다. 그리고 예상할 수 없었던 돈가방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온다.
루이자 메이 올컷이 쓴 유명한 동명 고전 소설을 모티브로 둔 <작은 아씨들>에서도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자매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자매들은 소설에 비해 부모 복이 없다. 생계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엄마는 심지어 첫째 오인주와 둘째 오인경(남지현)이 막냇동생 오인혜(박지후)를 위해 마련한 수학여행비를 들고 도망가 버린다. 그리고 가난한 세 자매는 각기 다른 욕망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항한다. 빈부 격차를 바탕에 둔 대결 구도가 명확하지만 개개인의 복잡다단한 내면을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의 미로를 구축한 <작은 아씨들>이 흥미로운 건 모든 면에서 다채롭고 개성 넘치는 여성 캐릭터들을 풍요롭게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가난한 환경 안에서도 각기 다른 지향점을 추구하는 세 자매뿐만 아니라 그 세계 전반을 장악한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다. 인주의 삶을 크게 전환시켜버리는 방아쇠나 다름없는 진화영(추자현)과 인경의 삶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고모할머니 오혜석(김미숙) 그리고 인혜의 삶에 동아줄처럼 찾아온 효린(전채은)을 비롯해 극적인 내러티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상당하며 면면이 또렷하다. 무엇보다도 <작은 아씨들>의 안타고니스트, 쉽게 말해 최종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원상아(엄지원)는 남성 캐릭터들로 점철된 악역 신에서 볼 수 없었던 히스테릭한 광기를 선보이며 여성성이 장르 발굴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여성 캐릭터의 점유율을 한껏 끌어올리면 가능해지는 이야기를 증명하고자 하는 작가의 야심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저는, 제 방식으로 지아비를 지킬 겁니다.”
<슈룹>의 중전 임화령(김혜수)은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구중궁궐의 왕비가 누리는 삶이란 호화롭고 우아하기만 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매일 같이 각기 다른 사고를 치는 대군들로 인해 단 하루도 마음 놓을 날이 없지만 의젓한 세자 덕분에 그나마 안심이었다. 하지만 백주대낮 날벼락처럼 쓰러진 세자로 인해 궁궐 내 기운이 심상치 않다. 중전과 대군들이 마뜩잖은 대비(김해숙)와 세자의 빈자리를 눈여겨보는 후궁들과 호시탐탐 왕권을 흔들려는 몇몇 대신들의 욕망이 들끓는 가운데 중전의 마음도 갈지자로 뛴다. 알아내야 할 것도, 돌봐야 할 것도, 대비해야 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탐정이 따로 없다.
우산의 순우리말을 빌린 제목처럼 <슈룹>은 자식들의 비를 막아주는 엄마이자 국정을 살피는 국모로서 고군분투하는 중전의 활약상을 그리는 사극이다. 세자의 암살과 책봉을 둘러싼 왕실 내의 음모와 경쟁을 그리는 <슈룹>은 왕과 대신을 위시한 남성적 세계관으로 궁궐을 조명하는 여타의 사극과 달리 궁궐 내 여성들을 주목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중전과 후궁 그리고 대비와 그 곁에 있는 상궁들까지, 왕가의 장식처럼 치부되던 여성 권력자들의 치열한 암투와 수싸움에 주목한다. 자식을 세자로 추대하려는 치맛바람 속에서 서로 맞물리고 돌아서는 관계가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 권력이 자리한 궁궐을 여성과 여성의 힘싸움을 그리는 무대로 만든다는 점은 그 자체로 도전적인 쾌감을 부른다. 왕실의 정사에 관여하는 권력 주체이기보단 왕실의 주변부에 자리하는 존재처럼 여겨지던 여성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것 자체가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을 확보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극의 한 뼘을 찾아낸 인상이다. 궁궐 배경의 사극 안에서 여배우들의 존재감을 이렇게 다채롭게 위시하고 발휘한 사례도 드물다는 점에서도 진보적이다. 스스로 발품을 팔고 동분서주하는 중전의 자태와 행위는 시대성의 한계에 갇히지 않겠다는 선언 그 자체다.
바야흐로 이젠 브로맨스의 시대를 넘어 ‘워맨스(Womance)’의 시대다. ‘우먼(Woman)’과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 워맨스는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의 욕구와 갈망을 대변한다. 이성 간의 러브 스토리를 그리기 위해 동원되는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남성들의 권력과 폭력 사이에서 희생되거나 그 사이 어딘가 곁다리처럼 낀 존재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온전히 그 세계를 주도하는 중심인물로 자리하고 함께 이끌어가는 존재로서, 함께 혹은 각자 자기 욕망을 펼쳐내고 발화하는 여자들은 아직도 할 말이 많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선택하는 존재로서 욕망하고, 고로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여성 서사라는 정의를 넘어 이야기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여자가 이야기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