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글로벌 신드롬의 중심 BTS. 미국 최대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로 우뚝 선 블랙핑크. 아이브, 뉴진스, 르세라핌 등 4세대 걸그룹의 연이은 글로벌 히트까지… K-POP이 역대급 전성기를 맞고 있다. 세계가 열광하는 K-POP 시스템의 핵심과 글로벌화에 대해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 씨와 음악평론가 김영대 씨가 나눈 이야기를 함께 만나보자.
글로벌 무대를 점령한 K-POP의 발자취
K-POP이 글로벌 무대에서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했을까? K-POP의 글로벌 성공을 뒷받침하는 K-POP만의 유니크한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그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0년대 초만 해도 K-POP은 국내 팬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음악이었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내에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면서 음악에 대한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우리 음악 안에서 세계적 동시대성을 구현하려고만 했다면, 외국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늘고 국내 방송이 해외로 송출되면서 우리 콘텐츠를 함께 즐길 잠재적 소비자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TV를 통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최신 트렌드에 맞춰 아티스트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런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젊은 층을 타깃으로 탄생한 아티스트들이 K-POP 아이돌 문화의 시초가 됐다. 데뷔 및 주력 활동 시기를 기준으로 이들을 통상 1세대에서 4세대로 나눠 구분하고 있다.
대표적인 1세대 아이돌로는 HOT, 핑클, 젝스키스, GOD 등이 있다. 1세대 중 SES와 보아는 최초로 해외 진출을 시도한 아이돌이기도 하다. 특히 보아의 경우, 기획 초기부터 해외 진출을 목표로 발굴해 데뷔까지 완벽한 J-POP 가수로 육성됐다. 언어는 물론 일본 현지의 톤 앤 매너까지 갖춘 현지화 전략으로 해외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어 소녀시대, 2NE1, 원더걸스, 2PM 등으로 대표되는 2세대 아이돌의 경우 미국·일본·동남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K-POP의 글로벌화에 초석을 다졌다. 그 와중에 2012년 발매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한류 열풍을 일으켜 글로벌 시장에서 K-POP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3세대 아이돌 그룹은 글로벌 시장에서 단기간에 밀리언셀러 달성, 빌보드 핫100 진입 등의 기록을 세우며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을 점령해 나갔다. 이들은 여전히 글로벌 탑 아티스트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뒤를 뉴진스, 아이브, 르세라핌 등 걸그룹 강세의 4세대 아이돌이 이어가고 있다.
K-POP은 기존 음악 시장과의 차별화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단순히 안무, 춤, 퍼포먼스로 일컬어지던 각각의 요소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승화시키며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또한 퍼포먼스로 아티스트만의 세계관을 표현하며 팬들과의 유대 관계를 형성한 점들이 K-POP만의 독보적인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 산업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CJ ENM의 세 가지 핵심 전략
K-POP은 이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산업이 됐다.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시스템과 인프라의 중요성 또한 갈수록 커지고 있다. CJ ENM 역시 이러한 트렌드에 맞춰 IP 생태계 확장 시스템인 ‘MCS’ 전략을 통해 음악 생태계 확장 및 글로벌화를 지향하고 있다.
MCS 핵심 전략 ① : 기획부터 데뷔까지 전 과정 아우르는 K-POP 매니지먼트 시스템
현재 K-POP 기획사들은 선순환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재능 있는 원석을 발굴해 인재로 육성하고 데뷔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 자체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방식으로, 기획부터 데뷔까지의 과정을 총괄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연습생이 데뷔하게 되면 아티스트 자체가 ‘음악 IP’가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완성된 사람을 찾아다니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각 제작사별로 특화된 시스템 아래 아티스트를 발굴하고 직접 트레이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다 보니 트레이닝 기간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긴 트레이닝 기간은 K-POP 스타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체계적으로 구축된 시스템 아래 장기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하기 때문에 경쟁력 면에서도 강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도 K-POP의 시스템을 모방한 발굴·훈련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팀워크 유지 방식이 미국의 문화와는 맞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숙, 선후배 관계, 리더와 멤버 간 위계 관계 등 그룹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감내하는 문화가 아이돌 시스템에 녹아있는데 현실적으로 미국의 문화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K-POP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콘텐츠 기업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CJ ENM에서 만든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아이돌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과정 자체가 비공개로 진행됐는데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그 판을 바꿔버렸다.
<보이즈플래닛>의 경우 아이돌의 탄생과 성장 과정을 전부 공개하고 심지어 팬들을 뽑는 과정까지 참여케 해 몰입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디션 과정을 함께한 고관여층이 자연스럽게 팬이 됨으로써 데뷔 시점부터 팬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시작부터 데뷔까지 전 과정을 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잡았다.
MCS 핵심 전략 ② : K-POP 팬들의 온·오프라인 놀이터, 팬 플랫폼
기존의 히트곡 제작 과정은 라디오나 TV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알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K-POP은 제작자가 원하는 소비자를 특정해 고관여층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이 원하는 맞춤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을 띠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고관여층인 K-POP 팬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공간이 필요해 등장한 것이 바로 팬 플랫폼이다. 예전에 홈페이지나 온라인 카페 같은 공간이 뉴미디어 시대에 맞게 플랫폼화된 것이다.
팬들의 놀이터라 할 수 있는 팬 플랫폼을 콘텐츠 기업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해 활성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하이브의 ‘위버스’, SM 엔터테인먼트의 ‘버블’ 등이 있다. CJ ENM 역시 글로벌 K-POP 컬처 플랫폼인 ‘Mnet Plus’라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최근 보이즈플래닛은 Mnet Plus를 이용해 전 세계 팬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온라인 플랫폼이다 보니 글로벌 팬들의 실시간 참여가 가능해 보이즈플래닛 파이널 투표 기간 동안 184개국에서 817만 표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오프라인 팬 플랫폼으로는 대표적으로 ‘KCON’이 있다. 해외 팬들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만나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KCON은 여기저기 흩여져 있는 글로벌 K-POP 팬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런 놀이의 장을 통해 자신이 K-POP의 팬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일반 팬에서 고관여층이 되는 경우도 많다.
몇천에서 몇만 명 정도의 규모로 시작한 KCON은 해가 갈수록 발전해 이제 10만 명 이상이 모이는 대규모 행사가 됐다. 최근 열린 ‘KCON JAPAN’에는 12만 명이 운집해 역다 최대 관객이 모였으며, 올해 8월에 열릴 ‘KCON LA’에는 더 많은 팬들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MCS 핵심 전략 ③ : 보다 확대된 광의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시스템
고전적인 매니지먼트는 아티스트를 매니징 하는 개념이지만 현재는 그 의미가 매우 광범위해졌다. 어떤 아티스트로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광의의 매니지먼트로 의미가 확대되다 보니 A&R(Artists and Repertorie)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노래와 춤 정도가 트레이닝 범주에 들었다면 최근에는 아티스트가 연기와 외국어뿐만 아니라 진출하려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 배울 수 있는 강연 시스템도 구축돼 있다. 아티스트들의 생명력 연장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훈련이 시도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광의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은 아티스트가 단순히 히트곡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신의 커리어를 이끌어 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또한 음악 자체의 수준을 높여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K-POP에 A&R팀이나 송라이팅 캠프(집단 창작 시스템)와 같은 실험적이고 체계적인 제작 방식들이 도입되면서 영미 팝과 일본 팝과의 격차를 줄이는 등 K-POP이 진정한 의미의 컨템퍼러리 대중음악으로 자리 잡는 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K-POP 스타의 해외 진출에서 시스템 수출로 진화
CJ ENM은 MCS 전략을 바탕으로 현재 미국과 일본 시장을 집중 공략 중이다. 일본 시장에서는 이미 현지 오디션을 통해 발굴된 INI와 JO1 같은 그룹들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K-POP 현지화 전략은 스타를 수출하는 것에서 시스템을 수출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K-POP 제작사의 최종 목적은 현지에 최적화된 완전한 현지화 가수를 배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노하우와 자본력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현지에서 K-POP의 경쟁력을 증명할 필요도 있다.
일차적으로 보아, SES, 비, 원더걸스 등이 현지에 직접 뛰어들어 가시적인 성과를 기록했었고 이차적으로 외국인 멤버를 활용한 현지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K-POP 시스템이 꿈꾸는 최종 단계는 현지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그들만의 그룹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K-POP 산업의 미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K-POP의 성공적인 현지화 전략을 위해서는 현지 관련 기업들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갖는 협업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국 기업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플랫폼 산업의 원천기술을 보유한 만큼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 주도권을 가지고 움직일 필요가 있다.
또한 시대마다 혹은 지역마다 다른 가치관이 적용되는 만큼 글로벌 시장 진출 시 안착할 수 있는 인문학적 고려도 준비가 필요하다. 다양한 문화권이 혼재하는 글로벌 시대에 단순히 현지 팬만 확보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지 문화 안에 K-POP이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K-POP의 글로벌 히트! 아티스트 개인의 재능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매니지먼트와 고도화된 프로듀싱도 한몫을 하고 있다. K-POP의 현지화를 위해 지금까지 쌓아온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하고 고도화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차별화된 전략과 시스템으로 다양한 모습의 K-POP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BEHIND TALK>은 CJ ENM의 유튜브 채널 <콘썰팅> 콘텐츠를 바탕으로 제작됐습니다.